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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멘토> 2021광화문글판대학생최우수상 저시살이

할머니가 챙겨주신 저시살이....

     

<편집자 주>


지난해 코로나19가 창궐한후 3번째 명절을 앞두고 있다. 코로나19는 우리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표현도 나왔다. 


이러한 정책과 제도는 우리명절에도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감염병을 막기위해 고향을 방문하지 않는 사람도 늘어났으며 선조들에 대한 추모 등 도 비대면으로 전한을 꾀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작금의 현실에서 사회 공동체 발전과 가족애라는 주제를 제시하고 논하고자  

지난 5월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에서 자기의 시간을 성찰하고 도전하여 최우수상을 수상한 황채린을 대학생1기 멘토로 선정하였다. 

 

이번 공모전에는 코로나19가 가져다 준 우리의 사회 모습을 조명한 글을 비롯해 가족 등 청춘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존재에 대해 깊이 고민한 글들이 많았다.


에세이 거시살이 글은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과 광화문 글판선정위원회 심사 등 총 3차의 면밀한 심사를 거쳐 최종 수상하였다.

 

  

 

 

황채린 에세이   저시살이

 

아직 겨울의 흔적이 남아있는 척박한 땅에 초록빛을 빼꼼히 드러낸 풀이 있다면 그건 쑥이다. 슬슬 이맘때쯤이면 할머니 밭에도 쑥이 자라고 있을 거다. 우리 집은 2~3주에 한 번은 꼭, 할머니 댁을 방문하는 오랜 규칙이 있다. 민들레와 함께 쑥이 꿈틀대고 있는 지금, 이 시기를 놓쳐선 안 된다. 한 주라도 시간이 어긋났다간 쑥이 너무 어려서 먹을 게 없거나 혹은 너무 질겨서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적당한 날을 골라 쑥을 캐러 할머니 댁에 가야 한다.

 


    황채린 부모님 고향 이미지사진


“아야, 지금 쑥이 참 보들보들하다.”

 

할머니가 보낸 정보를 입수, 그 주 주말 우리 가족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할머니 댁으로 향한다. 매년 봄, 우리는 이렇게 타이밍을 맞춰 할머니의 비옥한 땅에서 알맞은 쑥을 골라온다.

 

하지만 심각한 방안퉁수이던 유년 시절의 나는 쑥이 자라나는 3월을 두려워했다. 새로운 친구, 새로운 선생님, 모든 게 낯선 새 학기를 적응해내야 했기에 월요일을 앞둔 일요일 저녁부턴 늘 긴장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챙겨주신 저시살이들을 바리바리 챙겨 집으로 돌아오는 일요일, 아마도 그날의 저녁 식탁에는 보나 마나 쑥국과 봄 제철 나물들이 올라올 거다. 주말 동안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책상 앞에 앉아 한숨을 푹 내쉬고 있으면, 곧이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봄나물캐는 가족사진 이미지-


“어서 와서 쑥국 먹어~”

 

역시나 오늘 저녁은 쑥국이다.

 

향긋한 쑥과 약간의 흙 내음이 어우러진 구수한 쑥국을 맛본다. 봄의 맛이다. 아 이럴 수가, 혼란스럽다. 학교에 갈 내일을 생각하는 내 마음은 온통 심란한데 쑥국은 눈치 없게도 너무 맛있다. 입맛은 별로 없지만, 가뿐히 두 그릇을 해치운다.

 

이제는 어른이 되었다고 나름의 핑계를 이유로 할머니 댁에 자주 따라가지 않던 나는 오랜만에 집에 와서 할머니가 보낸 쑥과 취나물 무침에 밥을 먹는다. 저시살이의 봄 내음이 순식간에 방안퉁수의 어릴 적 나를 소환시켰다. 혼란스럽던 봄의 그 맛이다.

 

“엄마, 나 어릴 때 새학기에 적응을 못해서 매년 3월을 힘들게 보냈던 거 기억나? 이맘때쯤이면 꼭 할머니가 쑥 캐가라고 불러서 집에 돌아온 일요일 저녁에는 늘 할머니가 챙겨준 저시살이로 엄마는 밥을 해서 우리를 먹였잖아, 내일 낯선 학교에서 날 어떻게 지켜낼까, 걱정하면서도 쑥국은 너무 맛있어서 꼭 두 그릇은 먹어야 했다니까? 굴하지 않고 두 그릇을 먹게 하고 수많은 월요일을 버티게 했던 힘이... 여기에 있었던 걸까?”


    

  -사진 이미지-


“그래 맞아, 너 할머니가 봄마다 챙겨준 저시살이로 이만큼 큰 거야~”

 

그렇구나. ‘밭에서 죽지 않고 겨울을 넘겨서 이른 봄에 먹을 수 있는 배추 따위의 채소’, 저시살이. 할머니는 그 뜻처럼 죽지 않고 겨울을 넘길 수 있는 가장 강한 봄의 힘을 우리가 담아낼 수 있도록, 매해 봄마다 할머니만의 방법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계셨다. 그 때문에 나는 봄마다 할머니가 챙겨준 저시살이들을 꼭꼭 씹어먹고, 새로운 세상을 두려워하던 연약한 몸에서 꿈을 담아낼 수 있는 단단한 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쑥이 지금 딱 먹기 좋게 자랐다. 이번 주에 내려올 거지?”

 

“이번 주에는 유채 김치 담글 거야, 지금이 딱 제철이라 이번 주에 안 오면 못 먹어.”

 

무엇이든 퍼주고 싶은 할머니의 마음은 우리를 향한 사랑이자 관심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를 꾀어내기 위한 할머니의 귀여운 유인책이자 혼자 살고 있는 당신께서도 지켜보고 지켜달라는 신호이기도 했다. 2~3주에 한 번 할머니 댁에 가는 우리 집의 오래된 규칙이 할머니의 고독과 외로움을 채워줄, 우리가 당신께 드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저시살이’였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저시살이를 통해 서로를 지키고 지켜보는 돌봄의 사랑을 수행하고 있었다.

 

    - 사진 이미지-


할머니 마을에는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동네 할아버지들이 돌아가시고 마을에 이사를 오는 사람도 없어 1인 가구가 부쩍 많아졌다. 옆집 할머니 그리고 그 옆집 할머니도, 할아버지와 자식들이 떠난 집에서 홀로 생활하신다. 어떤 할머니는 마당에서 놀고 있는 우리 세 자매의 목소리를 들으셨는지 우리에게 슬그머니 옅은 웃음을 보내시고는 사라지신다. 인구 빈곤뿐만 아니라 정서적 빈곤도 함께 경험하고 있는 할머니의 마을에는 돌봄의 공백들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그도 그러한데, 현대사회의 개인화 현상이라든지,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과 같은, 서로를 돌봐줄 수 없는 이유도 함께 늘어나고 있어 마을에는 고독과 고립만이 넘쳐날 뿐이다.

 

하지만 봄에는 늘, 겨울을 견뎌내고 생장한 기특한 채소들이 자라나는 법이다. 우리에겐 매년 서로에게 줄 ‘저시살이’가 있다. 우리 집은 할머니의 유인책과 ‘2-3주에 한 번 방문하기’라는 오래된 규칙으로 돌봄과 사랑의 울타리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울타리 안에서 저시살이를 주고받을 수 있는 다정한 마음들이 보호받았다. 외로움으로부터 마을을 지켜내는 방법은 이러한 사랑의 울타리를 엮고 엮어서 서로를 지키고 지켜보려는 다정함의 총량을 늘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사진 이미지-


그리하여 외로운 사회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를 돌보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들로 돌봄과 사랑의 울타리를 만들고, 길을 잃고 무수히 떠다니고 있는 외로움들을 울타리 안으로 가두어 성실히 지켜보고 지키는 일이다.

 

올봄에도 할머니의 시그널을 받고 시골로 향한다. 이제는 먼저 물어보기로 하자.

 

“할머니, 새 김치는 언제 담가? 이번 주에 가도 돼?”

 

“지금 밭에 봄동이랑 자랐겠다! 이번 주에 내려갈게~”

 

 

황채린│전북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