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세계적 어린이·청소년 전문 출판사 스콜라스틱이 오너 경영인의 사망 후 유산 상속을 두고 분쟁에 휩싸였다. 지난 6월 향년 84세로 사망한 고(故) 리차드 로빈슨 주니어 전 회장이 한화 1조원대의 경영권과 개인재산 등 모든 유산을 30세 연하 연인인 이올 루체스(54) 스콜라스틱 이사회 의장 겸 최고전략책임자에게 넘긴다는 유언을 남기면서다.
2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루체스는 12억달러(1조3820억원) 규모의 클래스A 주식 등 출판사 경영권과 로빈슨의 개인 재산을 모두 상속 받게 됐다. 로빈슨에겐 두 아들과 형제자매, 전 부인 등이 있지만 이들은 한 푼도 물려받지 못하게 됐다. 이런 유언장은 지난 2018년 작성됐으며, 로빈슨의 측근들과 직계가족도 전혀 인지하지 못한 내용이었다.
스콜라스틱은 ‘해리포터’를 비롯, ‘신기한 매직스쿨버스’와 ‘헝거게임’ 등 세계적 히트작 시리즈를 내놓은 교육 컨텐츠 전문 출판사다. 미국에선 국정 교과서 수준의 신뢰와 인지도를 갖고 있다. 1920년 설립된 이 출판사에서 로빈슨 주니어는 2세 경영인이었다.
WSJ가 입수한 유언장 사본에 따르면 로빈슨은 루체스를 “나의 파트너이자 가장 친한 친구”라고 표현했다. 루체스는 캐나다 출신으로 1991년 스콜라스틱 캐나다 법인에 입사, 2014년 최고전략책임자, 2018년 스콜라스틱 엔터테인먼트 사장이 됐다. 사내에선 10여년 전부터 로빈슨과 루체스가 내연 관계라는 사실이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나, 몇 년 전 결별했다는 소문도 돌았다고 한다. 루체스는 디지털과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관심이 많은 공격적 경영주의자라, 보수적인 로빈슨과 공개석상에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장남 벤은 WSJ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유언장과 관련, “상처에 소금을 붓는 것 같다”고 했고, 차남 리스도 “너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로빈슨 전 회장의 아들들은 스콜라스틱 경영엔 직접 관여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유류분 제도 같은 것이 없이 고인의 유언이 100% 효력을 발휘한다. 당황한 로빈슨의 유족들은 이를 일부라도 되돌릴 법적 조치를 검토 중인데, 루체스가 이들에게 클래스A 주식과 부동산 일부를 내주는 방식으로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WSJ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