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전 8시 30분쯤, 서울 중구 서울역파출소. 60대 노숙인 A씨가 들어와 노숙인 전담 경관 박아론(38) 경사를 찾았다. “박 경사, 내가 지갑을 하나 주웠어. 주인을 찾아줘야 할 것 같아.” 두툼한 검은색 가죽지갑 속엔 빳빳한 5만원권 지폐 34장과 수표, 상품권 등 총 200여만원이 들어 있었다. 깜짝 놀란 박 경사에게 그는 말했다. “사실 내겐 길거리에서 줍는 100원짜리도 소중해. 근데 이 돈이 어디 쓸 돈일 줄 알고 내가 가져가. 지갑 주인이 몸이 안 좋아 병원비로 쓰려고 했으면 어떡해.”
박 경사는 그에게 ‘6개월간 지갑 주인을 찾지 못하면 지갑 전체를 소유할 권리가 있다’는 습득자 권리를 안내했다. 하지만 그는 “주인을 못 찾아도 내 거 아니야. 대신 언제가 됐건 박 경사가 주인 꼭 찾아줘”라며 홀연히 떠났다.
지갑엔 주인 명함이 있었다. 경찰 연락을 받은 지갑 주인 양모(77)씨가 4시간 만에 파출소로 들어섰다. 지갑은 1만원짜리 한 장까지 그대로였다. 양씨는 “자녀 2명이 어버이날이라고 50만원씩 용돈을 줬는데, 11일 저녁 서울역 쪽에서 지갑을 흘린 것 같다”면서 “그 노숙인 분을 꼭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A씨를 찾아나선 박 경사는 6시간 뒤 인근 중림동의 한 복지센터에서 책을 읽던 그를 발견했다. 그는 몇 차례나 “괜찮다”고 했지만 박 경사의 설득에 파출소로 향했다고 한다. 양씨도 한달음에 파출소로 왔다. 양씨는 “꼭 보고 싶었는데 와 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멋쩍게 웃으며 연신 머리를 긁적이던 A씨가 말했다.
“지갑을 보니까 제가 회사원일 때 생각이 났어요. 150만원이 든 월급 봉투를 받고 집에 오다가 그걸 몽땅 잃어버린 거예요. 며칠 간 속상해서 잠도 못 잤어요. 지갑 주인도 나랑 똑같이 끙끙 앓으며 며칠을 보낼 거 아닙니까.” 그는 2년 전까지 서울 외곽에서 건축설비 사업을 운영하다 실패한 뒤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양씨가 사례금 봉투를 내밀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 박 경사가 웃으며 “당연히 받으셔야 할 성의”라고 한 뒤에야 그는 망설이다 봉투를 받아들었다. 박 경사는 “파출소 관내에 있는 노숙인 170여 명을 만날 때마다 ‘유실물을 발견하면 꼭 가져다 달라’고 하는데, 한 달에 두세 번씩은 이렇게 가져다주는 고마운 분들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