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학동 4구역 재개발 붕괴 참사의 악몽이 채 가시지 않은 광주에서 또 다시 공사중이던 아파트 외벽이 무너져 내렸다.
11일 오후 3시46분께 광주 서구 화정동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외벽이 무너졌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해당 건물은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 중인 아이파크 201동 건물로 23층에서 34층 높이 부분이 무너졌다. 사고 당시 현장에선 콘크리트 슬래브 타설작업 중이었으며, 갱폼이 무너지면서 외벽 12개층이 붕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고로 오후 6시 기준 작업자 1명이 경상을 입었고, 2명은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6명은 연락이 두절돼 행방을 파악 중이다. 또 주변 주·정차 차량 20여 대가 건축물 잔해에 깔렸다.
갑작스런 붕괴 사고에 많은 이들이 큰 공포와 충격을 받았다.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인부 이모씨는 "지하에서 작업 중 갑자기 펑 소리와 함께 정전이 돼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지금 26살 인부 한 명과 30대 인부 한명이 크게 다친 것으로 안다. 다른 인부들의 상황은 어떻게 됐는지 걱정된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사고 현장 인근 유스퀘어 직원인 조모(63) 씨는 "일하는 중 10여분 간 정전돼 무슨 일인가 한참 당황했다"며 "아파트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가 아는 지인인데, 지금 연락이 안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달려나와 기다리고 있다"고 걱정했다.
공사장 인근에 주차된 차량이 파손됐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유모(63) 씨는 "여기에 동생 차를 주차해 놨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면서 "차가 얼만큼 망가졌는지 우리 차는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도 관계자들이 계속 못 들어가게 한다"고 하소연했다.
사고 현장 바로 옆 금호하이빌에 거주하는 김지혜(50)씨는 "전쟁 난 줄 알았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양말도 못 신고 뛰어 나왔다.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주변에 노인분들이 많이 사시는데 안전하신 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금호하이빌 내에서 문구점을 운영 중인 국모(62)씨는 "무너진 건물에서 상가까지 거리가 가 10m도 채 되지 않는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건물이 무너지면서 그 잔해가 매장 안을 덮쳤다"면서 "당시 함께 있던 직원 2명은 서둘러 대피했으나, 카운터 쪽에 서있던 나는 급히 자리에 엎드릴 수 밖에 없었다. 2차로 또 건물이 무너질 것 같아 직원들 도움을 받아 서둘러 가게를 빠져나왔다. 재난영화에서나 느낄 법한 공포였다"고 말했다.
국씨는 이어 "이 아파트는 공사가 시작될 때부터 문제가 많았다. 지하는 물론 상가 건물 외벽쪽에서 물이 콸콸 쏟아지거나 상가 앞 길이 쩍쩍 갈라졌다"며 "공사가 진행되는 내내 서구청에 100차례가 넘게 민원을 넣었다. 또 상가 사람들과 함께 서구청장을 면담하기까지 했지만, 공사는 계속 강행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건설 전문가들은 한파 속 무리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사고의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역 건설업체 관계자는 "정확한 붕괴 사고 원인은 조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영상과 사진으로 파악된 건물의 무너진 형태를 보면 공사기간 단축을 위해 한파 속에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한 것이 원인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영하권 추위 속 콘크리트 타설 또는 작업 이후 한파로 충분히 양생되지 못할 경우 동해(冬害)를 입은 콘크리트는 회복 불가능한 수준의 강도 저하가 발생한다"면서 "해당 아파트의 경우 외벽 부분만 나란히 뜯기듯 붕괴된 것을 보면 바깥쪽 부분의 콘크리트 강도가 현저히 약했져 있지 않았나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송창영 광주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는 "콘크리트 타설을 할 때는 하루에 할 수 있는 적정량이 있다. 굳히고 다시 작업하고 이런 과정이여야 하는데 한꺼번에 많은 양을 타설한 것 같다"면서 "본사에서 골조공사만 진행하고 분야별 공사는 하도급이 담당하면서 공사 품질이 저하되는 후진국형 재난이 벌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