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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벨기에 수교 120년… 피터 레스꾸이에 주한 대사

'김치'하면 한국 떠올려...중국 주장 걱정안해도 돼


“벨기에에서 ‘김치’ 하면 10명 중 10명 모두 한국을 떠올립니다. 중국의 김치 원조 주장에 그렇게 분노할 필요가 있을까요. 모방은 가장 진실한 형태의 아첨입니다.”


피터 레스꾸이에 주한 벨기에 대사는 지난 16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김치 원조 주장에 대한 의견을 내놓다가 대뜸 ‘프렌치 프라이’ 이야기를 꺼냈다. 마치 프랑스가 원조인 것으로 생각되는 감자튀김이 사실 벨기에에서 유래했다는 것.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벨기에에 주둔한 미군이 처음 감자튀김을 접하게 됐는데 당시 프랑스어를 사용한 벨기에 주민들 때문에 프랑스로 착각해 감자튀김을 프렌치 프라이로 불렀다는 이야기다. 레스꾸이에 대사는 “감자튀김의 원조가 프랑스도 벨기에도 아닌 스페인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감자튀김이 세계 최고이며 벨기에에서 이를 맛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벨기에를 비롯한 유럽에서 ‘김치’ 하면 한국이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인터뷰는 올해 한국·벨기에 수교 120주년이자 벨기에군의 한국전쟁 참전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시립미술관남서울관에서 열린 ‘미술관이 된 구벨기에 영사관’ 행사장에서 진행됐다. 남서울관은 옛 벨기에 영사관으로, 이번 전시에는 대한제국과 벨기에 사이에 체결된 한비수호통상조약 전문도 전시돼 있다.


◇중립국이었던 벨기에가 전하는 안보 교훈은 “안보는 동맹 통해 보장될 수 있다” = 레스꾸이에 대사의 한국에 대한 애정 어린 충고는 외교 안보 분야로도 연결됐다. 미·중 패권 경쟁에서 사이에 낀 ‘새우등’ 격이 된 한국에 “오늘날 우리의 안보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을 통해 보장된다”면서 한·미 동맹 중요성을 강조한 것. 여기에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럽 강국 사이에 위치했던 벨기에가 중립국 지위를 선택하면서 겪었던 뼈저린 교훈이 담겨 있다. 1830년 무장 혁명을 통해 네덜란드로부터 독립을 달성한 벨기에는 당시 중립국 지위를 조건으로 독립 국가로 인정받았고, 대한제국 고종 황제는 이런 벨기에를 중립국 롤모델로 삼았지만 모두 실패했다. 결국 벨기에는 1949년 나토에 가입했다.


레스꾸이에 대사는 “중립국 지위는 몇몇 국가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한국이나 벨기에의 경우는 아니었다”면서 “다자주의는 갈등을 피하고 공격을 억지하는 좋은 방법이다. 한국도 다자주의에 기반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과 유럽연합(EU)은 기후변화 대응 등 공동의 목표가 있고 함께 팀을 이뤄 해나가야 할 일이 많다”고 강조했다.


◇수교 120주년인 올해 양국 관계 강화에도 박차 = 레스꾸이에 대사는 유사한 지정학적 위치를 가진 한국과 벨기에의 협력 강화도 빼놓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양국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지난해 5월 유럽에서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퍼지자 한국은 벨기에의 한국전쟁 참전 용사와 벨기에군에 마스크를 전달했다. 당초 한국전쟁 70주년을 기념해 생존 참전용사들을 국내로 초청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무산되자 마스크 지원을 통해 70년 전 은혜를 잊지 않고 고마워하고 있다는 취지를 밝힌 것. 이에 필리프 벨기에 국왕도 한국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현재 벨기에에선 5분 안에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신속 검사를 시행하는 가운데 훈련견을 통한 확진자 검사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이 역시 양국의 새로운 협력 분야다. 레스꾸이에 대사는 한국의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매우 성공적이며 빛나는(shining) 사례”로 평가하면서 “훈련견 검사가 도입되면 우리 모두의 일상 복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교 120주년을 맞아 벨기에와 한국 양국에서는 올해 다양한 행사들이 개최된다. 레스꾸이에 대사는 특히 “오는 10월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감자튀김은 물론, 초콜릿과 맥주 등 벨기에 음식과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는 벨기에 페스티벌을 열 예정”이라며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촉구했다.


◇변희수 전 하사 사건에 대해선 “성 소수자 혐오로 인한 타살” 쓴소리 = 하지만 레스꾸이에 대사는 한국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최근 성전환 후 강제전역 조치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고 변희수 전 하사 사건을 언급했다. 벨기에 언론들이 매우 비판적으로 보도했다고 전하면서 “한국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직언했다. 특히 “변 전 하사의 죽음은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로 인한 사회적 타살로 보인다”며 “군의 대응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그녀가 환영받지 못하게 느끼게 했고 더 이상 살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21세기에 이런 일이 여전히 일어난다는 것이 미스터리”라고 밝혔다.


실제로 현재 벨기에의 부총리 중 한 명은 성전환자이며 지난해 출범한 벨기에 연립정부는 장관의 성별이 절반씩 균형을 이뤄 주목받았다. 또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총리로 재임한 엘리오 디뤼포는 동성애자다. 벨기에는 지난 2003년부터 동성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레스꾸이에 대사는 “우린 그 사람의 경쟁력을 보는 것일 뿐 성적 지향을 보지는 않는다”면서 “외국의 투자 유치를 원하고 세계에 개방된 국가는 성적 지향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레스꾸이에 대사는 2019년 대구에서 열린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열리는 퀴어 퍼레이드에는 많은 나라의 대사가 참석하는 등 관심이 많은 데 비해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에는 관심이 덜해 일부러 대구를 택했다고 한다.


그는 최근 이슈가 된 메건 마클 영국 왕세손비의 왕실 내 인종차별 폭로에 대해서도 “인종에 따른 차별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