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 정치컨설턴트
2022년 대선 레이스 출발 총성이 울리자마자 몸을 풀던 선수들이 빠른 속도로 뛰어나갔다. 국민의힘은 강력한 오너가 없는 권력의 공백 상태고 여당도 절대 주주가 없는 상황이라 유례없이 많은 후보가 패권을 노리고 있다. 군웅의 할거는 11월이 되면 삼국시대로 좁혀질 것이다. 누가 중원의 패권을 차지할까.
1990년 3당 합당 이후 한국의 정치 지형은 민자당 대 반(反)민자당, 한나라당 대 반한나라당, 새누리당 대 반새누리당의 구도였다. 보수가 상수인 보수 우위 시대였다. 2017년 보수의 분열과 탄핵 이후 정치 지형은 민주당 대 반민주당으로 변했다. 민주당이 상수인 민주당 우위 시대다. 오랜 시간 연대, 통합, 단일화는 (단독 집권이 불가능했던) 민주당의 전매특허였는데 지금은 보수의 고육지책이다. 2017년 탄핵 지진은 정치 지형을 바꿔 놓았다.
이번 대선은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수십년간 비주류였던 민주당이 어렵게 차지한 주류의 지위를 굳힐 것인가, 아니면 몰락한 보수가 다시 주류의 패권을 회복할 것인가. ‘주류 교체 전쟁’의 중대한 분수령이다. 또 하나는 민주화세대인 ‘586’ 대통령의 첫 탄생 여부다. 1960년 이후 태어난 세대에서 대통령이 나온다면 ‘586권력’은 패권의 정점을 찍을 것이다. 세력과 세대의 패권 공성전이 최대 관전 포인트다.
‘역사적’ 도전도 몇 가지 있다. ①1987년 이래 유지돼온 보수·민주 진영 권력 교체 ‘10년 주기설’이 깨질까. ②단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제3지대’ 대통령이 나올까. ③국회의원 경험 없는 최초의 대통령이 탄생할까. ④더불어민주당이 역사상 처음으로 같은 당명으로 대통령을 만들 수 있을까.
최초는 아니어서 역사적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두 번째 도전도 있다. ①2007년 이명박 대통령에 이어 지방자치단체장 출신 대통령이 나올까. ②1992년 김영삼 대통령처럼 30년 만에 진영을 넘어간 대통령이 나올까.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윤석열 검찰총장, 최재형 감사원장,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야권 후보로 분류되는 이례적 상황이라 가능성이 꽤 있다.
의미 있는 세 번째 도전도 있다. ①다자구도가 디폴트(기본 설정)인 한국 대선에서 2002년, 2012년 같은 사실상 양자 구도가 재현될 것인가. ②2002년 노무현·정몽준, 2012년 문재인·안철수와 같은 극적인 단일화가 성사될 것인가. ③2002년 노무현, 2007년 이명박이 대세론으로 앞서가던 이인제, 박근혜를 꺾은 것처럼 ‘언더도그’ 돌풍이 불 것인가.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역시 “누가 이길까”다. 여기서 ‘누가’는 ‘누구’가 아니라 ‘어느’를 뜻한다. “누가 대통령이 될까”보다 “어느 진영이 집권할까”가 훨씬 중요하다. 한국 대선은 국정운영을 책임질 정부를 쇼핑하듯 구매하는 선택이 아니다. 좋아하는 팀을 광적으로 응원하는 스포츠 경기도 아니다. 실존을 걸고 싸우는 진영 간 전쟁이다. 상대는 ‘이길’ 경쟁자가 아니라 ‘죽일’ 적이다.
전쟁과 스포츠 중간 어디쯤에 있는 선거도 전쟁과 스포츠처럼 전력·전략·정신력에서 승패가 갈린다. 정신력은 잃은 정권을 되찾겠다는 야당이 원래 강하다. 분열을 막으려는 의지, 투표를 하겠다는 의지 모두 야당 지지자가 훨씬 강하다.
전력도 밀리지 않는다. 2016년 총선 이후 잃었던 영토를 거의 되찾았다. 몽골 기병 같은 빠른 속도로 진군하는 이준석 체제는 지역·세대·이념·계층 모든 전선에서 연일 승전보를 올리고 있다. 변화 속도와 폭에서 민주당을 압도한다. 빼앗겼던 땅을 되찾는 데 그치지 않고 전통적인 민주당의 영토까지 넘보고 있다.
보수의 심장 대구서 “탄핵은 정당했다”고 당당히 밝힌 이준석은 민주당의 심장인 광주서 “저에게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은 단 한 번도 광주사태였던 적이 없고 폭동이었던 적이 없다.…대한민국 민주화 역사 속에서 가장 처절하고 상징적이었던 시민들의 저항”이라고 했다. 봉하마을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우려고 했던 가치인 소탈함이나 국민과의 소통을 우리 당의 가치에 편입시키겠다.…앞으로 우리 당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폄훼를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백범 기념관에서는 “보수 세력이 김구 주석의 업적을 기리고 추모를 하는 데 소홀했다면 잘못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온라인 엔터테이너’인 이준석은 유튜브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2030 MZ세대’에 ‘공정한 경쟁’의 대변인으로 비친다.
이준석과 MZ세대는 경쟁이 피곤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키는 아니지만 적어도 반칙과 특권보다는 공정하다고 보는 것이다. “젊은 세대의 정치 활성화 경쟁에서 우리 당과 민주당은 서로 다른 대안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민주당은 여러 명의 청년 정치인을 발탁해서 그들에게 중책을 맡기는 방식으로 임해왔고, 우리 당은 젊은 사람들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방식으로 임하고 있다. 그 경쟁에서 자신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부동산정책 전환을 통해 ‘중도로의 회군’에 애쓰고 있지만 지하철과 따릉이로 출근하는 이준석 대표에게 ‘변화 이미지’에서 역부족이다. 정치적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생각대로 현실을 바꿀 힘이 있거나, 그럴 힘이 없다면 현실에 맞춰 생각을 바꿔야 한다. 독재가 불가능하다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도록 변해야 한다. 민주당이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세상이 민주당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민주당 위기의 핵심은 전략 기능이 망가졌다는 데 있다. 국민의힘은 국민 55% 이상의 지지를 받는 길로 가는데, 민주당은 국민 35% 이상 지지를 받기 어려운 길에 집착한다. 지금은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전략적 캠페인에서 훨씬 유능한 정당이다. 국민의힘은 외연확장에 주력하는데, 민주당은 정체성에 집착한다. 정치는 지지기반을 넓히면 살고 좁히면 죽는다.
선거에서 55% 대 35%는 매우 중요한 수치다. 정권교체에 동의하는 여론이 55%를 넘고 정권재창출에 동의하는 여론이 35%를 밑돈다면 정권은 교체된다. 지금 그 언저리에 와 있다.
2020년 총선에서 마침내 주류 교체 전쟁서 승리한 듯 보였던 민주당이 역사상 최대로 확장했던 영토를 불과 1년 만에 거의 다 잃었다. 180석 오만이 결국 독이 되었다. 영남 빼고는 모든 지역을 석권했던 민주당이 이제는 호남에서만 확실한 우위다. 20~50대까지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세대에서도 40대만 여전할 뿐 50대는 이미 이탈했고 20~30대의 이탈 징후도 뚜렷하다. 부동산정책의 참담한 실패로 2% 부자뿐 아니라 중산층과 서민도 등을 돌리고 있다. 이념적으로도 진보층만 지지할 뿐 중도층은 오래전부터 보수와 같은 배를 타고 있다.
정치에서 상대를 경멸하면 민심을 잃는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은 이회창에게 분노했지만 이회창은 노무현을 경멸했다. 그것이 승부를 갈랐다. 36세 이준석 대표는 당내 대선 주자들에게도 거침없이 경고하고 의원들의 잘못된 발언에 대해 제지하겠다고 하는데, 송영길 대표는 야권 대선 주자와 야당을 향해 경멸을 쏟아내는 당내 의원들을 통제하지 못한다. 에토스(신뢰)·로고스(논리)·파토스(감성)가 모두 망가진 민주당은 메신저로서의 신뢰를 잃었다.
아무리 맞는 말을 해도 “다 맞는 말이지만 민주당이 할 말은 아니지”라는 말이 돌아올 뿐이다. 그나마 다행은 송영길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 (비록 국민의힘 이준석 체제보다는 느리고 완만하지만) 변화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민심을 악화시키는 결정을 하지는 않는다. 국민 55% 이상의 지지를 받는 선택은 못하더라도 35%의 동의를 받지 못하는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또 다른 위안(?)은 여론 지형과 정치 지형이 아직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민심은 분명히 정권교체 쪽이지만 국민의힘과 윤석열·안철수의 제3지대가 여전히 하나로 묶이지 않았다. 홍준표는 복당했지만 안철수와의 합당, 윤석열의 입당은 팽팽한 긴장 속에 있다. 잘못 다루는 순간 언제든 깨질 수 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에서 다른 의원들이 나간 것은 ‘탈당’이지만 안철수가 나간 것은 ‘분당’이듯, 지금은 영향력으로 볼 때 안철수의 합당은 ‘입당’이고 윤석열의 입당은 ‘합당’이다. 윤석열이 들어오고 안철수가 안 들어온다면 문제가 아니지만 안철수만 들어오고 윤석열이 안 들어오면 그건 문제다. 둘 다 안 들어오면 심각한 상황이다.
오세훈·이준석·윤석열 지지 기저에는 강한 정권교체 열망이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경선에서 예상을 깨고 오세훈이 나경원을 이긴 것은 중도 이미지 덕도 있지만 나경원이 후보가 되면 단일화 없이 3자 구도로 갈 가능성에 대한 우려 탓이 더 컸다고 본다. 승리에 대한 절박감이 경선 승부를 갈랐다.
만약 윤석열이 입당하지 않고 단일화 트랙으로 갈 경우 국민의힘 경선 역시 단일화 의지가 강한 후보에게 지지가 몰릴 것이다. 그럴 경우 2017년 대선에서 한 자리 지지율에서 출발해 최종적으로 24.1%를 얻어 21.41%의 안철수를 3등으로 밀어낸 경험이 있는 홍준표의 단일화 의지에 대해 정권교체를 갈망하는 야권 지지자들은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윤석열이 국민의힘 경선에 참여하든, 단일화를 하든 보수의 적자인 홍준표·유승민·원희룡이 던지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이 질문은 2002년 노무현이 이인제에게 던진 질문이다. ①윤석열로 이길 수 있을까? ②설사 이긴다 하더라도 그게 국민의힘의 승리인가? ‘민주당 DNA’가 약한 이인제가 (이회창에게) 이길 수도 없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자 대세론은 허망하게 무너졌다.
안에 있든, 밖에 있든 국민의힘 정체성이 약한 제3지대 후보의 치명적 약점은 야권에서 ‘누가 나가도 이기는’ 상황이 오면 지지율이 무너지는 것이다. 윤석열이 나가야만 이기는 상황이라면 어떤 방식이든 승산이 있다. 다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국민의힘으로서는 대선 후보를 못 내는 상황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야권 단일 후보 윤석열은 국민의힘 후보로 나가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다. 윤석열은 안철수와 달리 요구를 받아들일 것이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어떨까. 기대대로 윤석열이 무너지면 기회가 올까.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최재형은 민주당을 탈당한 후 야권 경선에 참여한 ‘금태섭 포지션’에 있다. 윤석열이 무너진다면 최재형이 아니라 홍준표·유승민·원희룡에게 기회가 돌아갈 것이다. 최재형이나 김동연 같은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있다고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브랜드(능력)’와 ‘정체성(신뢰)’이 약한 후보가 스토리(매력)만으로 이길 수는 없다.
오랫동안 선거를 관찰해왔지만 2022년 대선 승자가 누가 될지는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특히 윤석열과 안철수가 모두 제3지대에 머무르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대선 구도가 양자 구도, 3자 구도, 4자 구도 모두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분열하거나 (정체성에 집착하다) 스스로 지지기반을 좁힌 세력은 패했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한다. 민주당은 역사의 경고 앞에 겸허해야 한다. 민주당은 혁명적 변화가 절실하다. <경향신문 칼럼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