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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반짝별' 됐다가 '별똥별'된 사람들...

정몽준, 고건, 안철수, 반기문...윤석열은?


2017년 1월 18일 오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광주광역시 조선대에 강연하기 위해 등장했다. 유엔 총장으로 10년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1주일여 지난 시점이었다. 그런데 강연을 듣기 위해 모인 80% 이상은 어르신이고, 학생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의 방문에 항의하려고 시위를 벌인 학생 10여 명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반 전 총장 캠프에서 일한 A씨는 말한다. “캠프 내 일부 사람은 총장님이 대학서 강연하면 구름처럼 학생들이 몰려들 거라고 주장했지요. 현역 유엔 사무총장 때면 몰라도, 정치판이라는 링에 오르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아요. 대학 강연은 보류하고 좀 더 상황을 지켜보자고 의견을 냈는데, 결국 체면만 구겼지요. 별의 순간을 이어나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로 올라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언급하며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표현했다. 김 위원장은 14년 전인 2007년 3월에도 언론 인터뷰에서 “인간에게는 살아가는 동안 ‘별의 순간’이 하나 있는데, 그 순간을 포착하지 못하고 기회를 놓치면 역사의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밖에 없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확신을 갖고 정치에 덤벼들어야 한다”고 했다.

별의 순간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절정의 인기를 잡는 상황을 의미한다. 2000년 이후 특정 정당에 몸담지 않고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찍은 사람으로 범위를 좁힐 경우, 별의 순간을 잡은 사람은 정몽준(2002년), 고건(2007년), 안철수(2012년), 반기문(2017년) 4명 정도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그 ‘순간’만을 잡았을 뿐, 별이 되지는 못했다. 왜 그랬을까. 당시 별의 순간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물었다.


① 2002년 정몽준

2002년 8월, 무소속 정몽준 의원이 대선 여론조사에서 처음 1위를 차지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한축구협회장으로 2002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냈고, 민주당 대선 후보 노무현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새 인물의 등장을 원하는 여론이 높아지자 인기가 치솟았다. 하지만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46.8% 대 42.2%로 졌다. 대선을 불과 25일 앞둔 날이었다.

당시 정몽준 후보의 대변인이던 김행 전 청와대 대변인은 “별의 순간을 잡았을 때 곧바로 은하수를 만들어 뿌려야 했는데, 막판에 타이밍을 놓치면서 실패했다”고 했다. 그는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 방식에 대해 양측이 처음 합의했음에도, 캠프 내부에서 수정을 요구하면서 시점을 잃은 게 패착이었다고 했다. 김 전 대변인은 “당시 싸움은 프로(민주당) 대 아마추어(정 후보 측 국민통합21)의 대결과 같았다. 노무현 후보는 선거를 전문으로 하는 세력이 받쳐줬는데, 우리 쪽은 민주당에서 온 사람, 정 후보가 경영하는 현대그룹에서 온 사람 등이 뒤섞이면서 적군과 아군(彼我)도 제대로 구별되지 않았다. 정당 진용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으니 이기기 어려웠다”고 했다. 이종근 전 데일리안 논설실장은 “인기를 기반으로 대권을 거머쥐려면 정치에 대한 스토리가 필요한데, 당시 정몽준 후보는 월드컵 말고는 감동을 준 적이 없고, 정치철학이나 스토리를 보여주기엔 기간이 너무 짧았다”고 분석했다.


② 2007년 고건

고건 전 총리는 2004년 무렵부터 2006년 초반까지 대선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기간에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무난히 일했고, 노 대통령 탄핵과 대연정 제안 등으로 피로감이 커지자, 그의 안정감에 호감을 보낸 국민이 많았다. 하지만 이후 지지율을 계속 떨어졌고, 대선을 11개월 앞둔 2007년 1월 말 그는 출마를 포기했다.

당시 고 전 총리를 도운 김덕봉 전 국무총리실 공보수석은 “중립 지대를 새롭게 만들려고 했는데 정당의 뒷받침 없는 상황에서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고 전 총리가 대선 후보로 거론되던 시절 노 대통령은 그를 총리로 임명한 것에 대해 “실패한 인사였다”고 발언했다. 그러자 여권 지지자가 대거 등을 돌렸고, 지지율이 떨어졌다. 김 전 수석은 “최소한 원내 교섭단체 규모의 정당 지원이 있어야 그런 상황이나 공격에 대한 방어가 가능했다. 정당 지원 없이 대선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고 느꼈다”고 했다. 고 전 총리의 정체성이 모호한 것도 문제였다는 지적도 있다. 차재원 전 국제신문 서울정치부장은 “고 전 총리는 보수 진영에서 국회의원과 총리를 했다가 진보 진영에 와서 서울시장과 다시 총리를 하다 보니, 국민이 정체성이 뭔지 의문을 가지면서 인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③ 2012년 안철수

안철수 현 국민의당 대표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던 2011년부터 대선 후보로 거론됐다. 이후 그의 대선 출마 여부는 늘 뉴스의 중심에 있었다. 대선을 석 달여 앞둔 시점에 ‘새 정치’를 내걸고 공식 출사표를 던졌지만 실패했다. 당시 캠프에서 활약한 B씨는 “안 후보의 정치 근육이 작았다”는 표현을 썼다. B씨는 “기업 경영을 잘하니까 국가 경영을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고, 후보의 능력이 다소 떨어지면 캠프에 있는 참모의 능력이라도 좋아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인사는 “대선은 1년 이상 준비해야 하는데, 공식 출마 선언을 하고 캠프가 제대로 가동된 것은 두 달여에 불과했다. 안 후보가 대선을 제대로 준비하려고 했다면 그해 4월에 치른 총선에 먼저 나와 정치판을 겪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태일 전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기업 경영이나 운동처럼 직업에는 그 나름의 평가 기준이 있는데, 정치도 마찬가지”라며 “안 후보가 당시엔 정치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치가 요구하는 평가 기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④ 2017년 반기문

2016년 12월 3주 차 리얼미터 여론조사를 보면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의 지지율은 23.3%로 전체 1위였다. 다음해 1월 그가 총장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자, 인천국제공항에는 환영 인파가 몰려들었다. 하지만 첫날부터 스텝이 꼬였다. 반 전 총장이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승차권을 사려고 했는데, 발매기에 현금 2만원을 한꺼번에 넣다가 구설에 오른 것이다. 반 전 총장 캠프에 몸담았던 A씨는 “나이도 많고,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왔기에 굳이 지하철 귀가라는 장면을 보여줄 필요가 없었는데, 그를 돕던 외교관 출신 인사들이 적극 권했다가 망신을 당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후 반 전 총장은 대학 강연에 나섰지만 ‘겨울방학에 학생도 없는데 무슨 대학 강연이냐’는 핀잔도 들어야 했다. A씨는 “유력 대선 후보가 나타나면 사방팔방에서 다양한 사람이 모여들어 각자 의견을 내는데, 이를 잘 판단해내는 게 후보의 능력”이라며 “탄핵으로 예정보다 반년 이상 빨리 대선이 치러지게 되면서, 반 전 총장이 정치를 익히고 판단할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결국 스스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또 다른 캠프 인사는 “정치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정치보조금을 받는 정당이 필요한데, 입국 전에는 당장 영입할 것 같던 보수 진영 인사들이 머뭇거렸다. 정당 지원 없이 나서다 보니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그 역시 정치 근육이 없었다는 분석도 있다. 차재원 전 국제신문 부장은 “유엔 사무총장 재직 시절에는 어딜 가나 환영하고 받들어 모시지만, 정치판에 들어오는 순간에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정치라는 것이 얼마나 험하다는 것을 각오하고 와야 하는데, 거기에 대한 준비가 안 돼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⑤ 2022년 윤석열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대선을 1년여 앞두고 별의 순간을 잡았다. 그가 별이 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은 “권력욕을 바깥으로 완전히 드러내면 인기가 떨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며 “정치에 대한 수련이 돼 있어야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 텐데 아직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으니 성공 여부를 예단할 수 없다”고 했다. 최병묵 TV조선 해설위원은 “지금까지 별의 순간을 잡은 사람들이 실패한 것은 모든 것을 자기 중심으로 놓고, 혼자 고고한 척, 정치권은 구태로 봤기 때문”이라며 “법조 출신 엘리트들은 대개 ‘머리’로만 정치를 하는데, 윤 전 총장은 이런 전철을 밟지 않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윤 전 총장은 대부분이 모범생인 법조 엘리트와는 달리 10여 년 동안 고시촌에 있으면서 후배들 술도 사주고 이런저런 것을 겪었다. 특히 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치받으면서 자기 영역을 개척했기 때문에 예전 후보들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종근 전 데일리안 논설실장은 “윤 전 총장이 여권과 대립하면서 맷집이 생겼는데,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 말의 일관성이 있는지, 정치인으로 협상과 조율 능력이 있는지에 따라 운명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