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이재명 등 여권의 두 강력한 대권 후보가 압도적인 지지로 차기대선은 ‘우리 손안에’라고 호언장담하고 있을 때 야권 후보들은 도토리 키재기를 하며 한자리수 지지율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정치권으로의 등장은 강렬했다. 견고한 지지율을 자랑했던 문재인 정권과 180석 거대 여당에 맞서 ‘법과 정의의 사도’같은 메시지로 안타를 날리자 정의의 밥에 굶주린 국민들은 환호했다.
윤 전 총장이 총장직을 내던진 이후 계속되는 여론 조사에서 30%를 넘어 마의 40%를 넘나드는 고공행진을 하며 어느 듯 차기 대권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 있지만, 안타깝게도 주인공에 걸맞는 이렇다할만한 대사가 없다.
윤 전 총장이 대선에 출마할 것이냐부터 어떤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대사는 한마디도 없고 한 원로철학자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를 만나 인생상담을 한 것이 전부고, 절친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만나 시국과 관련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몇마디 대화내용만 흘러나온다.
윤 전 총장이 구체적인 정치적인 행보라고 한다면, 김한길 전 민주당 대표와 만난 적이 있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오래 전에 만나 점심 한끼 한 적이 있고,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는 모종의 소통을 하고 있다지만 언제적 얘기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윤 전 총장은 어저면 검찰주의가 아니라 신비주의인지도 모른다. 그에게 강렬한 권력의지가 있는지, 대통령을 맡아 이 나라를 정의로운 나라로 만들어 볼 야망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언론이 윤 전 총장에 비판적인 시각은 배제하고 신비주의에 가깝게 키워준 면이 크다”는 추미애 전 장관의 말이 족집게 인지도 모른다.
과거 고건 전 총리나 반기문 전 UN사무총장도 한때 40%의 지지를 받는 고공행진을 했지만 결국 대권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그들은 신비주의적 대권행보를 계속 해왔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도 남의 집 잔치보 듯 했고, 그를 떠받쳐줄 정당도, 국회의원도, 인물도 구체적으로 거론되지 않았고, 구체적인 정치소신이나 권력의지를 드러내지도 않았다.
대선 1년도 채 남지 않은 이 시점에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윤 전 총장은 한마디쯤 내뱉을 시간이다. 자신이 머물 둥지가 여권인지 야권인지, 함께할 새도우 캐비넷이 누구인지. 정치소신과 권력의지는 어느 정도인지, 어느 후보가 당선되면 좋겠는지 구체적으로 밝힐 때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안갯속같은 신비주의 전략은 100% 대권필패 카드다. 차기 대권이 1년도 남지 않은 이 시점에 더 머뭇거리다가는 비정치인인 윤 전 총장이 대권행보를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은 것 같다. 바로 지금 나설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