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0 (토)

  • 맑음동두천 -3.0℃
  • 맑음강릉 2.2℃
  • 맑음서울 0.4℃
  • 맑음대전 -1.4℃
  • 맑음대구 2.5℃
  • 맑음울산 2.3℃
  • 맑음광주 0.4℃
  • 맑음부산 2.8℃
  • 맑음고창 -2.4℃
  • 구름많음제주 6.6℃
  • 맑음강화 -0.3℃
  • 맑음보은 -3.3℃
  • 맑음금산 -3.4℃
  • 구름조금강진군 -1.9℃
  • 맑음경주시 1.9℃
  • 맑음거제 2.5℃
기상청 제공

기본분류

<초대석> 대통령 선거 이후의 단상 '한국 사회의 다음 목표를 그리며'

박명림 (연세대 대학원 지역학협동과정 교수)

  박명림 (연세대 대학원 지역학협동과정 교수)


결렬했던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점은 두 후보와 정당의 사생결단식의 선거 과정에 비하면.0.73% 차이라는 거의 무승부에 가까운 미세한 표 차에 의해 승패가 결정이 났다는 사실이다. 제도적 법률적 승패는 의심의 여지없이 분명하지만 정치적 심정적으로는 사실상 비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민주화 이후의 대통령 선거 중에 절대적 숫자로나 상대적 비율로나 최소 차이였다.

 

본질적으로 한계와 내장한 민주주의

 

선거 이후의 많은 언설들이 제안하듯 이 작은 차이는 아마도 반드시 통합 정치를 하라는 상징적 징표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힘의 대등성 때문에라도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그 정도의 작은 표차도 한 사람은 나라를 통치하는 전권을 갖고 다른 한 사람은 아무런 권한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기존 제도의 압도적인 위력과 극단적인 불합리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반듯시 개선되지 않으면 안 되는 잘못된 현 실인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제도를 만들기 이전까지는 현 제도에 승복해야 한다는 점 또 한 분명하다. 그것은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위해 그러해야 한다는 당위의 측면에서라기보다는. 기존의 제도 또 한 우리 사회의 민주적 합의를 거쳐 완성된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미 많이 지적되어온 점이지만, 민주주의는 민주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서 한계와 장점을 본질적으로 스스로 내장하는 기제인 것이다. 어떤 이론가들은 민주주의의 모순적 오묘함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민심을 내자하는 기제인 것이다. 민심을 비례적으로 반영하지 못하는 현재의 헌정 체제에 대한 개혁을 오랬동안 주장해오기는 했지만, 새로운 합의의 틀이 만들어지지 전까지는 일단 현재의 헌법을 준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헌법 개혁이 불가능하다면 헌재의 제도 내에서라도 승자독식과 권력독점을 제한할 운용 방법을 찾는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연합정부를 성공시켰던 극소수를 빼고는 실제로 민주화 이후 모든 대통령들은 지지와 득표의 비율과 정도를 훨씬 더 초월하는 승자독식과 권한 독점의 불합리성을 피해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피해갈 의사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권력은 다른 권력에 의해 제도적으로 제어되지 않을진데 통제될 방도가 없는 것이다. 인류에게 근대 민주 공화국의 토대를 제공한 초기의 대 이론가는 이를 두고, 권력은 권력에 의해서만 견제되어야 한다고 언명한다. 그리하여 그는 덕조차도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공화국 이전에는 법치를 초월하여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덕치(주의)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인간과 권력과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이 아닐 수 없다.

 

공적 공간에 넘쳐난 혐오와 적대의 말들

 

이번 선거를 지켜보면서 갖게 되는 다른 측면의 무거운 생각은 나라의 규모나 수준은 더 커지고 더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보들의 크기나 선거의 문화나 정치 언어들은 점점 더 작아지고, 또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의 언어들은 가장 저급했다.,뭔가 단단히 잘못 가고 있음에 틀림없다. “나라의 모든 문제를 다룬다는”는 뜻을 정치는 그로 인해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과 이익을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갈등을 수반한다. (정치는 애초에는 도시,마을,성(城)의 모든 문제를 다룬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정치의 본질일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단지 정당과 지지 후보, 정당과 진영이 다르다고 해서, 과연 공적 공간에서 인간 상호 간에 이토록 증오와 적대, 혐오와 분노의 감정과 연설들을 아무런 제어 없이 표출해도 좋은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로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한 사회의 정치의 수준을 넘어, 같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공동체 자체의 예의와 품격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물론 다음 세대에 대한 (‘부정적인’)교육과도 직결된다.

 

오물의 배설에 가까운, 저 정도로 공격적이고도 폭력적인 언어 구사와 인식 구조, 시민 윤리와 감정 체계를 갖는 사람들이 우리의 동료 시민일 뿐만 아니라, 한 공동체의 최고 대표가 되려 한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려운 동시에 크게 부끄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적 인간관계에서조차 그러한 교양 수준과 상호 관계는 탈락과 파탄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민주 사회를 이루었다는 현실 이면에는 그동안의 우리의 대표 선발 과정이나 대표 체계, 또는 공적 윤리 교육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가 않다면 우리가 투표해야만 하는 대표들의 시민 의식과 윤리, 행동과 언어의 수준은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승자독식 권력 구조가 한없이 키운 갈등

 

자주 강조한 바와 같이 한국 사회의 갈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최고 수준의 갈등 자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심각하다는 점이다. 그것이 불비례적인 승자독식의 권력 구조 때문이라는 점은 이미 많은 국제 비교 연구들이 논구하였기 때문에 이 점은 재론하지 않으려 한다. 기실 그것은 일반의 성정, 또는 인간 사회의 본질에 해당된다. 즉 인간들은 비용과 효과의 차이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크다면 얼마든지 전자를 지불할 각오가 되어 있다. 모든 것을 제공하는 권력 독점을 위해 불법은 물론 목숨까지도 지불한 사례들을 역사는 자주 보여준다.

 

권력이 주는 효능과 이익이 이토록 절대적이지 않다면 모든 것을 희생하고라도 도전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인간들은 너무도 큰 횡재와 이이을 위해서는 자주 명예와 윤리를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게다가 정치는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는 그럴듯한 대의명분까지 제공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뻔뻔하고 적나라한 후안무치를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다. 고래로 갈등의 완화를 위해서는, 군주제를 포함하여, 다른 모든 것에 앞서 권력과 가치의 독점 구조와 질서를 해체해온 까닭이다. 종교도 재화도 마찬가지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도대체 완화되지 않고 있는 이 공동체의 가장 오래된 근본 습속으로서의 권력 독점, 인물주의, 중앙 집중 현상에 대해 이제는 전면적인 재해석과 재구성을 향한 본격논의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우리 사회가 안온하고 성숙한 인간 공동체로 나아가기에는 이 고질적인 습속의 뿌리가 너무도 깊고 너무도 질기기 때문이다. 우리의 과녁이 제도와 습속 모두를 향해하는 이유다,

 

산업화와 민주화 너머 문화화와 교양화를 의하여

 

권력의 최고 정점으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이 잘못된 독점과 현상을 해체하지 않는다면 자유롭고도 다원적이며, 발랄하고도 교양 있는 인간 공동체의 건설은 앞으로도 상당한 대가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동안 세계에 자랑할 성공적인 산업화와 민주화, 세계화와 정보화를 통해 한국 사회는 전후 가장 빨리 발전한 나라로 평가받아왔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갈등 의제들의 폭발적인 분출, 즉 ‘내로남불’로 불리는 이중 기준, 부동산 폭등을 포함한 민생 문제, 사회경제적 양극화, 격렬한 진영 대결, 코비드19 대감염병으로 인해 지나쳤지만, 지금의 한국은 경제 규모, 무역과 수출, 기술력, 국방력에서 세계 5-10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를 통해 드러난 부끄러운 정치 문화와 언설들, 증오와 적대의 집합적 마음 상태를 보면서 차분히 우리 사회의 다음 목표랄까 과제를 상념해보게 된다, 그것은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세계화와 정보화 다음의 어떤 상태나 단계를 말한다. 요컨대 그것은 교양화, 문화화, 성숙화가 이닐까 싶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의 물질적 풍요와 민주주의는 점점 더 우리 자신의 속물성과 부끄러움의 크기를 함께 키우는 자양분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퐁요와 교양은 점점 더 모순적인 대척 관계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아니 이번 선거가 보여주었듯 어쩌면 이미 그러한 중병이 너무도 깊숙하게 진행되었는지도 모른다.

                                                   

                                                                          발췌 : 열린연단 문학의 만남

 

 

필자 박명림 (연세대 대학원 지역학협동과정 교수)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 동아시아 지역협력 및 통합 연구센터 센터장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하버드대학교 하버드 옌칭대학교 합동연구학자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실장

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