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피플 | “가장 보고 싶은 곳이 있어요. KBS 가요무대요.”
이정호 KBS 명예봉사단장의 시간은 그 한마디에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독 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 연합회 김춘동 회장의 연락을 받은 건 지난해 6월 초. 미국에서 살고 있는 파독 광부·간호사 12명이 ‘고국 방문’을 위해 한국을 찾는다는 소식과 함께였다.
■ “가요무대 한 번만”…가장 ‘가벼운 무대’를 원했던 이유
10박 11일 일정으로 전국을 방문할 예정이었던 그들은,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보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꼭 한 번은 ‘가요무대’를 방청하고 싶다”는 뜻밖의 소망을 먼저 꺼냈다.
독일에서, 또 미국에서 고된 시간을 버티게 해준 건 결국 ‘고국의 노래’였다는 이유였다.
이정호 단장은 “가요무대 방청이 어렵다는 걸 알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부탁을 듣고 KBS 제작진에게 직접 연락했다. 방청을 성사시키기 위해 사연을 적고, 신청 절차를 밟으며 ‘신청곡’까지 받아 적었다.
그 과정에서 이 단장은 파독 광부·간호사들을 단순한 ‘역사의 주역’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단장에게 있어 그들은 누군가의 위로와 공감이 필요한 ‘해외의 노동자’와 같은 자리였다.
■ 신청곡은 ‘동백 아가씨’…끝내 못 들려준 한 곡
그는 연세가 들어 요양원에 머무는 이들, 진폐증 등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는 현실을 함께 언급하며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다른 삶도 있다”고 말했다.
이 단장이 국내에 온 파독 광부·간호사들에게 가장 듣고 싶은 노래를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은 예상 외였다. 바로 이미자 가수의 ‘동백 아가씨’였다.
그러나 당일 큐시트에 해당 곡이 없어, 정작 그 노래는 들려주지 못했다. 소개 멘트도, 환영 박수도 없이 촬영 후 사회자와 사진 한 장을 남기는 것으로 일정이 마무리됐다.
그 ‘미완성’이 단장에게는 오래 남았다. 목욕탕을 가도, 길을 걸어도 마음속에서 ‘동백 아가씨’가 되뇌어졌다고 했다. “마지막 여행일 수 있는데, 듣고 싶은 노래 한 곡을 못 들려드렸다”는 그의 자책이, 다음 행동의 출발점이 됐다.
■ “더 아프시기 전에”…윤봉길기념관 봉사 콘서트 결심
그 무렵, 또 하나의 사연이 겹쳤다. 전북 김제에 사는 파독 광부 한 명과 ‘농악’과 ‘국악’ 이야기로 가까워졌는데, 그가 혈액암 투병에 들어갔다는 소식이었다.
이 단장은 ‘동백 아가씨’의 미안함, 아픈 광부 지인의 현실이 한꺼번에 마음을 밀어 올렸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그는 파독 62주년 ‘아트 메모리’ 콘서트를 기획하기로 한다. 장소는 윤봉길기념관.
마침 리모델링 중이어서 ‘예약이 비어 있는 시점’과 맞물렸고, 예약금 없이 ‘봉사 콘서트’로 진행하겠다고 뜻을 전하며 날짜를 잡았다. 해당 콘서트는 11월 20일 윤봉길기념관에서 열렸다.
결심 다음에 남은 것은 현실이었다. 공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예산’인데, 대기업을 찾아가도, 여기저기 문을 두드려도 답은 쉽지 않았다.
■ 예산 ‘0’에서 시작…아내의 한마디와 ‘200만 원’
추석에는 고향인 전주까지 내려가 후원을 요청했지만 “행사에 직접 참석하지 않는 곳은 후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막히기도 했다.
전환점은 의외의 자리에서 찾아왔다. 교회 가족 모임에서 아내가 “당신, 그 얘기해 봐”라고 등을 떠밀었고, 단장은 그 자리에서 파독 광부·간호사들을 위한 공연을 준비하며 겪는 막막함과 ‘왜 이 일을 하게 됐는지’를 꺼내놓게 됐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모임의 한 어르신이 다음 날 “절대 말하지 말라”며 200만 원을 건넸다. 단장은 그 돈을 “2천만 원, 2억처럼 컸다”고 표현하며, 가장 먼저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이정호 단장은 “혼자 하다 보니 미흡한 점도 많다”면서도, 콘서트 실황을 녹화했고 편집본을 유튜브로 전 세계에 보내 ‘새해 선물’처럼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열악한 상황에서 그는 계속 파독 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고 있다. 끝내 들려주지 못했던 한 곡의 미안함과 ‘더 늦기 전에’라는 마음이다.





















